재즈 피아니스트 이지영의 생각들 : 재즈 에비뉴 - Jazz Avenue (2022)

Jazz Avenue Original Interview

피아니스트 이지영

김효진 :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한번 부탁드릴게요.

이지영 : 안녕하세요. 재즈 피아니스트 이지영입니다. 반갑습니다.

김효진 : 그럼 간단하게··· 살아온 과정을 들려주세요.

이지영 : 살아온 과정? 되게 길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웃음)

차분히 들으면서 읽어보자

이지영 : 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네요. 음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학생들에게 내 얘기를 할 땐 “나도 늦게 시작했다. 다른 거 하다가 음악 하는 거니까 여러분도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 이런 말을 많이 했는데요, 나이가 들고 내 인생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나는 생각보다 어릴 때 운이 되게 좋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많이 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김효진 :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셨어요?

이지영 : 예를 들면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클래식 피아노를 열심히 시키셨어요. 동네 학원에 보내는 게 아니라 집에서 신경 써서···.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지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피아노를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쳤어요. 대단히 진지하게, 학교 대표로 콩쿠르도 나가고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면서 그만뒀어요. 제가 지구력이 부족한 스타일이라 연습도 별로 하고싶지 않았고, 클래식 피아노를 계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낀 거죠.

김효진 :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죠.

이지영 : 하지만 음악은 여전히 좋아했기 때문에 대학교에 들어가서 라이브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동기들과 록 밴드를 만들었어요. 고려대학교 동아리 ‘1905’의 창단 멤버가 된 거죠. 제가 3학년 때 뽑은 후배가 재즈 피아니스트 고희안씨, 3기 멤버에요. 그렇게 록 밴드 생활을 하면서 밴드 음악을 조금씩 경험하기 시작했는데 선배님 중 한 분이 재즈를 되게 좋아하셔서 저희한테도 이것저것 소개해주셨어요.원래도 재즈라는 음악에 관심은 있었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재즈라는 음악을 알게 되었죠.한창 빠져서 음반도 많이 사고, 클럽 가서도 많이 들었고요.

김효진 : 재즈 플레이어가 되신건가요

이지영 : 그때만 해도 제가 재즈 뮤지션으로 일을 하거나 돈을 벌어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재즈를 들어보면 너무 좋은데그걸 어떻게 연주하는지 궁금했어요.하지만 학생이라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서점에서 ‘재즈’라는 글자만 보이면 다 사봤죠. '빌 에반스 재즈 명곡집' 사다가 쳐보기도 하고. 그치만 이론은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 그냥 곡을 외워서 어디 놀러 가면 “저 재즈 피아노 칠 수 있어요” 하고 ‘Autumn Leaves’ 연주하고 그랬네요.

김효진 : 대학을 졸업하고는요?

이지영 : 취직을 했어요. 한국전력공사에 들어갔죠. 그런데 직장에 다니면서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이번엔 재즈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간 게 당시에 신사동에 있던 '서울재즈아카데미' 였어요. 일주일에 이틀 씩 직장인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야간반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배우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럴 수 있었던게 저는 클래식 피아노를 오래 쳤기 때문에 연주에 몸이 익숙했고, 대학 생활 내내 밴드를 하면서 악기를 구별해 듣는 훈련이 잘 되어있었거든요. 사실 음악을 늦게 시작한 친구들은 드럼의 구조를 모르고 베이스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도 잘 몰라요. 근데 저는 그런 게 익숙한 상태였으니까 성장이 훨씬 빨랐던 거예요.

기뻤어요. 시작한 게 너무 잘 되니까 신나기도 했고, 내가 굉장히 특별하다는 생각도 했죠. ‘내가 이걸 잘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에 회사 생활은 너무 재미가 없었고요. 그래서 10개월 정도 다니다가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대학때는 휴학 한번 하지 않았고, 졸업 후엔 바로 취업했으니까 나이도 되게 어렸죠. 그래서 부모님께 “회사 그만두고 음악 해도 될까?”라고 여쭤봤는데, 허락하고 도와주시겠다고 해서 기쁘게 관뒀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나오고 한 달 만에 IMF가 터져버렸고, 아버지가 하시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절 도와주실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그렇게 되니까 음악을 하고 싶었던 열정이나 용기 같은 것들이 다 사라지더라고요. 회사를 다니면서 음악은 취미로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3개월 만에 다시 취업을 했어요.

김효진 : 아쉬우셨겠어요.

이지영 : 꿈을 접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다시 생겼어요. 게다가 두 번째 회사가 진짜 힘들었어요. 조직적인 분위기, 상사 응대 같은 것들에 적응하기 어렵더라고요. 음악을 하고 싶은데 집에선 날 도와줄 수가 없고···. 그렇게 생각이 무척 많던 시기에 지금의 신랑을 만났어요. 연애를 한 거죠(웃음).

베이시스트 최은창과 피아니스트 이지영 부부는 JSFA를 비롯한 여러 연주를 함께 한다.

김효진 : 어떻게 만나셨어요?

이지영 : 직장인 재즈 동호회에 들어갔다가 같은 밴드를 하게 됐어요. 진지하게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듣던 사람인데, 음악에 관한 대화도 자주 나누고 저에게 용기를 많이 줬어요. 그때만 해도 음악을 해야겠다는 결정은 못하고 있었어요. 용기도 부족했고, 음악을 해서 먹고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외려 음반 수입하는 회사 등 관련 직종의 일을 찾아보고, 인터뷰도 해봤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그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인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굉장히 오래 고민하다가 마침 동덕여대가 2년 차 편입생을 뽑더라고요. 내가 여기에 붙으면 음악하고 살 운명인 거고, 떨어지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시험을 봤는데 붙었어요. 그래서 2월 28일까지 근무하고 3월 1일부터 학교에 갔어요. 퇴직금으로 등록금을 냈고요.

김효진 : 음악하실 운명이었네요.

이지영 :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첫 번째 회사에서 그만두고 음악을 시작했으면 또 때려치웠을것 같아요. 왜냐면 그때는 믿을 구석이 많았거든요. 부모님한테 기댈 수도 있었고. 하지만 두 번째 회사 이후로는 제가 모든 상황을 숙고하고 충분히 마음의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죠.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 다른 거 다 포기하고 음악 하는 거니까 제대로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던 때여서, 동덕여대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어요.

김효진: 그때 나이가 어떻게 되셨었나요?

이지영 : 그때가 26살, 2학년으로 편입했으니 동기들이랑 5살 차이였어요. 그러다보니 내 앞가림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나봐요. 돌아보면 음악 시작하고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 같거든요.수업 듣고, 계속 연습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 영수 과외도 하고. 조금 익숙해진 뒤에는 재즈 피아노 레슨도 시작했죠. 생각보다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학생이 빨리 늘었고 주 수입원이 과외에서 레슨으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두 번째 학기 다닐 무렵부턴 재즈클럽에서 연주할 기회가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그땐 되게 용감했어요. 지금의 저랑 다르게 당돌했었고, 자신감에 차 있던 거 같아요.

김효진 : 지금과는 많이 다르신가요?

이지영 : 예전 제 성격에 대해서 생각나는 얘기가 있는데요, 얼마 전에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영상 하나를 발견했는데 제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인터뷰하는 영상이었어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지. 정말 싸가지 없게 말하는 거예요(웃음). 싸가지 없다는 게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말 저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 확신과 있고 많은 걸 깨달은 듯한 자신감이 보이더라고요.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걸 싫어한 사람도 있었겠죠?요즘은 말할 때 굉장히 조심하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게 많잖아요.어쨌든 내가 확신에 차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음악에 있어서는 그런 때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클럽에서 처음으로 트리오 연주를 했던 것도 그랬어요. 베이스는 지금의 신랑이 치고 있었고, 드럼을 맡아주실 분을 찾아야 하는데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선생님들에게 추천받아서 무작정 전화를 걸었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정말 용감했죠. 지금이라면 절대 그렇게 못 해요. 그분이 드러머 허여정인데, "동덕여대 다니는 누구인데 혹시 저랑 같이 트리오 연주를 해주실 수 있냐" 그랬더니, 흔쾌히 "그래요." 하고 같이 연주를 시작해주셨어요. 지금 같으면 그렇게 못 했을 텐데. 그땐 내가 좀 다른 사람이었나(웃음)?

김효진 : 하하, 재미있네요 (웃음)

이지영 : 그 트리오 팀을 통해서 야누스의 박성연 선생님을 비롯해 재즈 1세대 선생님들과 안면을 트기 시작했고, 당시 신동진 선생님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그분 밴드에서 연주하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재즈 뮤지션이 많지 않았어요. 전국에서 재즈 피아노 하는 사람을 세는 게 가능할 정도였으니까. 어리더라도 연주가 좀 된다 싶으면 연락해주셨죠. 그렇게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활동을 시작하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벌써 활동하면서 연주하고 있지만, 아직 공부하고 배울 게 많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더 넓은 세계를 알고 싶었어요. 그때 마침 남자친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차라 "함께 유학을 가자."하고 결혼을 빨리 한 거죠. 스물 일곱에요.

김효진 : 정보도 많지 않았을텐데, 유학 준비는 어떻게 하셨어요?

이지영 : 돈이 없으니까 가장 경제적으로 유학 갈 방법을 찾으려고 유학원을 통하지 않고 웹사이트를 엄청나게 뒤졌어요. 구글에 '미국 음악 학교 순위'를 찾아서 학교 사이트들을 하나씩 다 들어가 보는 거죠. 1년 학비는 얼마인지, 장학금은 얼마나 주는지 다 조사해보니까 그때 'University of North Texas' 가 좋은 학교인데 학비도 싸더라고요. 그래서 거기로 정하고 미국으로 향했어요. 다행히 옛날에 공부를 열심히 해놔서 토플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지 않았고, 클럽에서 연주하는 영상들을 보내니까 예상보다 결과가 빨리 나왔거든요.

김효진 : 그거 참 좋네요...

이지영 : 그런데 저희는 다른 전공의 학사 학위가 있는거니까 학부로 편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은 전공 학위와 무관하게 실력만 되면 대학원에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1년만 다닌 후에 바로 대학원에 지원해서 3년을 다녔어요. 대학원은 원래 1년 반에서 2년 정도의 과정인데, 저희는 계속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걸렸죠.

김효진 : 어떤 일을 하셨어요?

이지영: 학교에서 주는 일이나 동네 꼬마들 레슨하고, 한인 교회 가서 반주도 하고요. 졸업할 무렵엔 운 좋게도 전설적인 트럼펫 연주자 중 한 명인 메이너드 퍼거슨Maynard Ferguson과 함께 투어를 할 수 있었어요. 당시 메이너드의 밴드는 젊은 뮤지션들이 씬에 발을 담그기 시작할 때 거쳐 가는 의미에서, 졸업생들이 학교 친구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꾸려졌거든요. 때마침 피아노랑 베이스를 맡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우리 둘 다 참여하게 돼 9개월 정도 함께 투어를 다닐 수 있었죠. 그 후엔 한국에 돌아왔어요.

김효진 : 생각보다 빠른 복귀였네요. 미국에 남고 싶진 않으셨어요?

이지영 : 미국에 남아서 음악을 할지 한국에 돌아올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당시엔 한국에 돌아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어요. 미국에서 재즈를 하려면 뉴욕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럴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그렇게 2005년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머무르고 있어요. 얘기가 좀 길었나요(웃음)?


김효진 :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볼게요. 혹시 자녀가 음악을 하겠다고 할 때, 부모의 입장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이지영 : 음... 저는 어릴 때 선생님들이 재능이 많다고 얘기하는 학생 중 하나였어요. 저도 그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연습을 하기 싫어도 이걸 그만두고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제 의지가 많이 개입되었던 거예요. 고등학교 때 음악을 그만두기로 결론을 낸 것도 저였는데, 스스로가 그만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해선 부모님도 별 말씀 안하셨죠. 결정적으로 재즈가 저에게 잘 맞았던 게, 정해진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걸 조금 어려워하고 굉장히 많이 떠는 스타일이거든요.그리고 기본적으로 클래식은 연습이 부족하면 자기가 알아요. 저는 그럴 때 태연하게 뚫고 나갈 만큼 강단 있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멘탈도 강하지 않고 심리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 스타일이다 보니 클래식 연주자로서는 어렵겠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어렴풋이 깨달았던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부모님과 음악적인 문제로 부딪힌 경험은 없었던 것이고 이후에 내가 음악을 다시 하겠다고 했을 때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씀하셨죠.

그렇다고 개입을 많이 하는 부모님과 학생의 관계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지금 부모가 된 처지에서,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현실적인 걸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말릴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요.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어서 부모님도 실수할 수 있어요. 과거의 사고방식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잘못된 근거가 될 수도 있겠죠. 결론은 잘 모르겠어요. 학생 중에서도 자기가 뭘 가지고 있고 원하는지 알고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계획을 세지고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굉장히 감정적이거나 일시적인 기복에 의해서 그게 전부인 것처럼 느끼는 때도 있어요. 후자의 경우가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어떤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하고 이야기를 다양한 얘기를 해보면서 한 발짝 물러서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나은 길로 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김효진: 나이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혹시 적지 않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보세요?

이지영: 사실 요즘 같으면 권하지 않아요. 물론 음악을 하는 건 어떤 식으로도 반대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얘기하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내 생계 수단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무작정 동일시하지만 않으면 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예요.음악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더라도 이걸로 먹고 사는 건 힘드니까 다른 걸 하면서 내 음악 활동을 지원하라는 식으로 얘기해요.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생계 수단은 그 사람이 가진 재능, 성향, 구체적인 능력을 진지하게 고려해서 결정할 부분이고, 음악은 다른 직업을 가진 채로도 연습할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쉽진 않겠지만 두 가지를 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많거든요.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직업으로 삼고 있어요. 가르치는 게 즐겁고 좋아하는 일이긴 하지만 내 연주랑은 크게 상관 없거든요. 내가 진짜 아티스트인가? 에 대해 늘 물음표를 붙일 수밖에 없는 게, 제 삶의 90%는 연주와는 관련 없는 일에 쓰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저도 전문 연주자는 아니란 말이에요. 다른 일을 하면서도 내가 뮤지션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연습하고 무대를 찾아서 연주하고 활동을 유지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실 운의 영향도 있는 거라 조심스럽고 어려운 부분이죠.

김효진 : 자신을 뮤지션으로 생각할 것인가는 스스로 규정하는 정체성의 영역인 거네요.

이지영 : 맞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운이 좋아서 하고 싶은 일과 생계수단이 비슷한 편이지만, 사실 요즘엔 그걸 결부시키기가 참 어렵잖아요. 음악을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뮤지션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재능도 부족하고 그저 그런 것 같은데 생각보다 잘 꾸려나가는 경우도 많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음악이 잘 되고 그걸로 먹고 살수도 있다면 그 사람은 복을 받은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인생이 실패하거나 잘못된 건 절대 아닌데, 가끔 '내가 이걸로 돈을 벌지 못하니까 나는 실패한 거야' 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마음이 아파요.

김효진: 멘탈이 약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이야기는 무척 술술 잘하시네요. 멘탈과 주장은 다른 건가 봐요(웃음).

이지영 : 제가 말을 좀 세게 하고 있죠(웃음)?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10년 동안 하다보니 가급적이면 확신을 가지고 얘기해주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 것 같긴 한데요. 그것과 별개로 저는 되게 고민도 많고 그래요. 솔직히 저는 40대 중반이 되면 인생의 문제, 고민 같은 것들이 다 해결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사실 작년부터 올해까지 가장 큰 슬럼프가 와서 되게 힘들었거든요. 실제로 다른 거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어요. 막 때려치우고 그런 것까진 아니더라도 다른 일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만큼 했으면 저도 제 것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말 쉽게 무너지고···. 말하는 스타일 때문인지 되게 센 이미지가 있는데, 저 멘탈도 약하고 누가 얘기 잘못하면 며칠 동안 끙끙 앓아요.

김효진 : 얼마전에 인터뷰 한 다른 분도 최근에 되게 힘들었다고 하셨어요.

이지영 : 현실적으로 우리 세대의 뮤지션들은 후배들이 너무 부러워하는 세상에 있죠. 음악하면서 먹고살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행운이고, 제가 세계적인 뮤지션은 아니지만 제 음악을 알고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다는 것도 운이 좋은 거죠. 반대로 그런 입장에 있다보니 불만을 드러내고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거고요.

그것과 별개로 음악적으로는, 나이가 드니까 내 한계가 여기까지 라는게 보이는 시점이 와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더 잘 할 수 있을것 같고, 보석을 찾아서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구덩이를 파 내려가는 기분으로 음악을 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그게 재능의 문제일 수도 있고 노력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하고 끝이 좀 보이는 것 같아요.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예외를 가지고 얘기하자면 끝이 없겠죠. 제가 갑자기 세계적인 스타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잖아요. 하루 아침에 실력이 몇 배 좋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으니까 한계에 부딪히는 시점이 40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40대 뮤지션으로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김효진 :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어떠세요?

이지영 : 농담 좀 섞어서, 내가 지금 20대였으면 음악 안 했을 거라고 했어요. 과거엔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부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열심히 하면 내가 책임지고 내 앞가림은 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정말 모르겠어요. 내가 지금 스무 살이라면 이 춘추전국시대 같은 대한민국 재즈 씬에, 명문대 나와서 직장생활 때려치우고 음악 한다고 들어갈 수 있을까? 못할 것 같다고 얘기를 하죠. 그러다 보면 10대, 20대 뮤지션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들고요. “할 수 있어!” 라고 얘기할 수 없을만큼 시장이 어렵고, 그 일부는 저희의 책임도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얘기를 한 가지 하자면요. 음악, 특히 재즈는 ‘제3의 눈’ 같은 거예요. 예를 들어서 모든 사람이 흑백만 인지하는 세상에서 색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겠죠.흑백의 세상에 사는 사람에 비해 환희와 감각의 폭이 넓잖아요. 재즈라는 음악은 소리에 대한 감각을 끊임없이 훈련시켜주고, 음악이 가진 의미(멜로디, 화성, 박자 같은 것들이 아닌 음악이 가진 특별한 힘)에 집중하는 것을 훈련하는 음악이에요. 그런 음악을 꾸준히 함으로써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넓은 경험을 하게 되죠.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 자체가 되지 않을 경험을요. 흑백TV만 보고 산 사람이 컬러TV가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존재하는 차원보다 높은 차원을 볼 수 없는 것 처럼요.

그래서 저 또한 소리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재즈를 하고 나서 클래식 음악이 너무 좋아졌어요. 클래식 음악을 들었을 때 그게 어떤 건축물의 구조물 처럼 들리는 거에요. 옛날에는 그냥 ‘아름다워' 이렇게 보이다가 이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음악을 끌고 나가서 곡을 만들었구나 하는 것들이 들렸을 때 그 감동 같은 것. 그런 것들을 내가 인간으로서 경험해볼 수 있다는 거는 우리가 한평생 살고 갈 때 얻어낼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축복같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 발 더 나아가서, 뮤지션들은 말이 아닌 음악으로 서로 대화를 하는데, 이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순간에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대가들의 공연을 보기만 해도 그런 게 느껴지고요. 그게 연주자가 좋은 라인을 쳐서 그런 게 아니라, 뭔가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존재하거든요. 우리가 비록 대가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그걸 맛볼 수 있어요. 그것은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중독된 것처럼 음악을 하는 거겠죠.특히 재즈 뮤지션이라면 그걸 다시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음악을 함으로써 금전적인 보장은 받을 수 없겠지만, 그런 보상은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실히 얘기해줄 수 있는 거예요. 이건 뮤지션이 아니라도 한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봐요. 단순히 잘 먹고 잘사는 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김효진 : 40대 뮤지션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이지영 : 40대 뮤지션으로 산다는 것···. 뻔한 말이지만 마음은 아직 젊어요(웃음). 20대 때에 40대를 볼 적에는 내가 저 때가 되면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거로 생각하는데, 겉모습만 늙어가고 속은 똑같더라고요. 나의 내면은 똑같은데 사람들이 나를 40대로 본다는 게 그냥 슬퍼요. 마찬가지로 60대나 70대들도 비슷한 느낌을 가질 거라고 상상하면 슬퍼지는 거죠. 나 스스로가 보는 것보다도, 밖에서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힘들 수 있다는 걸 느껴요.

그치만 40대가 아티스트의 끝은 아니잖아요. 100세 시대라고도 하고, 외국 재즈 아티스트들 봐도 70대에 활동하시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보면 40대는 전성기 수준이에요. 파릇파릇한 20대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30대부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40대에 메인으로 활동을 많이 하는 식인 거죠. 우리도 음악 시작할 때 그런 걸 기대하잖아요.

김효진 : 평생 연주하면서 사는게 꿈이죠

이지영 : 그렇게 되려면 두 가지가 중요한데,하나는 계속 성장함으로써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뮤지션과 실력으로 비교되지 않을만한 음악성을 구축하는 거예요.내 음악을 계속 들어줄 이유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거죠. 나보다 더 빨리 치는 사람, 곡 잘 쓰는 사람은 계속 나올 건데 그건 그 사람의 음악이고 나는 나만의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죠. 그런데 40대인 내가 정말 그런 걸 만들었나, 스스로 당당하게 '이건 이지영의 음악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음악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늘 자문하게 되죠. 또 다른 하나는, 환경 자체가 음악만으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에 음악 외적으로도 생업을 가져가야 한다는 거구요.

김효진 : 생업이라 하면 가장 많이들 생각하는게 교수일 거에요. 혹시 교수로서의 삶은 어떤건가요?

이지영 : 조금 조심스러운 얘기인데, 자기 음악을 하고 싶어서 교수가 되려는 친구들이 많아요. 근데 저는 정말로 교수가 되기 위해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땐 교수가 될 수 있는지도 몰랐죠.실용음악과가 없던 때니까요. 저는 감사한 상황에 놓였고,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사실 교수와 뮤지션은 서로 전혀 다른 직업이거든요. 교수 일을 하다보니 뮤지션이 아닌 상태가 제 삶의 80%는 돼요. 교수가 되기 이전에는 시간강사를 했었는데, 저한테 배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민망할 정도로 정말 많은 학생들을 만났죠.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도 키우고 있고. 그렇게 돌아보니까 내 인생에 아티스트로서의 지분이 너무 작다는 걸 스스로 알아요. 연습도 안하고, 음악도 많이 안듣고... 설령 남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지라도 창피한 거죠. 30대엔 똑같이 연습 안 해도 연주를 많이 했고 당찬 포부 같은 게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것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음악적인 한계도 조금 느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어요. 클럽에서 연주하고 JSFA에 속한 모습만 본다든지, 제가 지금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누리고 있는 생활 수준만 보는 거죠. 누가 어떤 차를 탄다고 하면, ‘재즈 뮤지션이 되면 저런 차를 타는구나’라고 생각해버려요.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잖아요. ‘실제로 대부분의 뮤지션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연주만 하면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이런 것들을 보면 다른 문제거든요.

김효진 :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게 맞는 말 같네요.

이지영 : 슬픈 표현이지만 씬 자체가 많이 쪼그라들고 있잖아요. 씬이 작을수록 새로운 아티스트에 대한 대중의 기다림은 더 커요. 왜냐하면 보던 사람만 보고, 10년 내내 계속 활동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엄청 신선한 걸 내놓거나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야지, 비슷한 것만 계속하고 있으면 관심의 대상이 되기 어려워요. 아니면 팬 층을 형성해야 오래 가죠.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이 사람 공연이면 가고 싶고, 음반을 듣고 싶어 하는 팬이 일정 수 이상 존재하면 그 아티스트는 살아남을 수 있어요.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요. 하지만 우리 세대 아티스트 중엔 그걸 해낸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저런 의미로 생각이 많은 40대 뮤지션의 삶을 살고 있어요.

김효진: 내 팬을 만드는 방법은 뭘까요?

이지영 :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걸 알면 저도 열심히 했겠죠(웃음). 그런데 저는 감사하게도 비슷한 것들을 경험했어요. 미국에서 메이너드와 투어를 다닐 때에도, 이 사람은 레전드니까 연주를 한다고만 해도 사람들이 티켓을 사거든요. 그러면 블루노트 같은 곳에서 연주해도 며칠씩 매진되는 거예요. 살아 생전의 연주를 한번이라도 보려는 사람들, 오랜 팬들, 그렇게 음악을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경험을 1년 동안 한 건데, 그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뭘 해도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는 관객들이었죠. '얼마나 잘하나 보자'가 아니라 '연주를 얼른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는 관객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연주하면 엄청난 힘을 얻거든요. 내 음악이 환영받는 무대에 서면서 음악이 점점 성장하는 경험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도 재즈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누군가 외국에서 활동하고 오면 호기심을 갖고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클럽에서 연주할 때에도 학생들이 많이 왔고요.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좋은 경험을 한 나머지, 그게 처음으로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게 최근에 40대에 들어서면서 부터에요. 내 이름에 별로 관심 갖는 사람도 없고, 내 음악을 기다리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드는 거예요.그나마 JSFA에 있을 때는 또 잠깐 인기가 많아져서, 음악을 반겨주는 관객들을 한 번 더 만났었죠. 실제로 제가 음악하면서 가장 감동했던 순간이 언제였냐면 JSFA 단독공연을 했을 때인데 저희 노래 중에 <Four Jackets>이라는 곡이 유명하잖아요. 그걸 연주하는데 관객들이 떼창을 하더라고요. 내가 쓴 음악을 저 사람들이 다 알고 불러주는 멋진 경험을 한 거에요. 아쉽게도 계속 유지하진 못했죠. 그게 유지가 안 되면 내 음악을 하는 기반이 없어지는 거예요. 기반 없이는 음악을 장기적으로 하기 힘들고요.

우리 세대 뮤지션들이 팬을 만들지 못하고, 자기 마케팅을 해내지 못하고 환경을 그냥 즐기며 내버려 둔게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제야 깨달아요.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 융통성 있는 사고방식이 조금 모자라는 직업군이기도 하죠. 과거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이젠 그런 걸 잘 하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시대로 바뀌게 된게 아닌가 싶어요. 새로운 능력을 길러야 하는거죠.

김효진 : 학생들을 만나면서 느낀 감정이나 생각도 많을 것 같아요.

이지영 : 학생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학생들을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던 게 2005년쯤인데 그때와 10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는 걸 느껴요. 물론 제가 만난 학생들이 전체를 대변하는 게 아니니까 일반화할 순 없지만, 사고 과정 자체가 바뀌면서 아직도 적응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김효진 : 어떤 부분에서 특히나 그런걸 느끼시나요?

이지영 : 정보를 얻는 방식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껴요. 우리 세대는 글에서 정보를 얻었다면 지금 세대는 영상으로 정보를 찾고 습득해요. 그래서인지 어떤 지식이나 기술이 '내 것이 되었다'고 느끼는 시점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책에서 어떤 내용을 읽어도 그게 내 건 아니거든요. 특히 음악에서는 더 그런게 있는데, 내가 무언가를 머리로 아는 것과 그것이 나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 다른 얘기란 말이죠. 저는 '내 것이 되었다' 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드는 느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그런데 요즘에는 정보에 접근하고 취할 수 만 있으면 내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생각의 출발점부터 다른 경우에는 소통할 때 이해하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김효진 : 너무 많은 정보를 빠르게 취할 수 있으니까요.

이지영 :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학생들이 수동적인 학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가끔은 이게 입시 방식에서 오는 문제 같다고 생각도 해요. 입시야말로 짧은 시간에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핵심이니까요. 실용음악과의 시스템도 문제죠. 차라리 많이 뽑고 난 다음에 그만두고 싶으면 자유롭게 그만둘 수 있고 자기가 다른 공부를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할텐데, 너무 소수인원으로 뽑아서 한번 시작했으니까 그만둘 수도 없는 애매한 시스템이다보니.. 이건 단순히 실용음악이나 재즈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걸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거죠.

돌아가자면, 수동적으로 내가 필요한 걸 항상 누가 가르쳐 주고 짧은 시간에 누가 가장 최선의 방법을 설명해 주고 하는 거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삶을 살고 있어요. 입시 선생님의 경우도 실제로 잘 치는게 아니라 잘 치는 것처럼 보여 주면 성공한 선생님이 되잖아요. 그렇다보니까 ‘이거는 어떻게 연주 해야 돼요?’ 라는 질문이 왔을 때 본인 스스로가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식으로 까지 연결이 잘 안 되는 느낌이에요. 내가 능동적으로 내가 음악을 듣고 따라 쳐 보고, 카피해보고, 이 느낌을 몸으로 채득할 때까지 시간을 들여야 얻어지는 것이 있는데, 수동적인 방식은 시간을 오래 기다려주지 못해요. 빨리빨리 해결이 되야 하는거죠. 어떤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봐야 잘 할 수 있을까, 무슨 책을 보면 잘 될 수 있을까, 무슨 유튜브 강의를 보면 가장 효과적으로 될 수 있을까. 다른 분야의 지식은 그런 식으로 얻는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음악은 아까 말했듯이 내가 아는 거랑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갭 차이가 너무 크거든요. 그리고 그 간격은 능동적으로 공부 하는 습관이 들지 않으면 메울 수가 없어요.그래서 실제로 많은 젊은 학생들이 아는 것은 너무 많은데, 할 줄 아는 건 없으니까 내가 딱 보여 줄 수 있는 일부. 10초짜리 영상 죽이는거는 할 수 있어요. 근데 그게 그 사람 음악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계속 훌륭한데 그 중에 10초를 잘라서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랑, 다 별론데 준비하고 준비해서 1분짜리 죽이는 거 만들 수 있는 건 다른거죠. 그런데 이게 또 요즘 필요한 마케팅 기법이 되니까 이 모든게 악순환이 것 같은 느낌도 들구요.

김효진 : SNS 때문에 혼란을 겪는 친구들도 있더라구요.

이지영 : 그러나 궁극적으로 오래가고, 주변 뮤지션들의 지지를 얻고, 아티스트로써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죠. 안타까운건 가지고 있는 재능은 충분히 좋은데 능동적으로 얻어내고 버텨내는 훈련 방식이 우리나라 사회 전반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나이가 스무살이 되도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어릴 때부터 그런 경험을 했었어야 되는데 말이죠. 열심히 할 것 같다가 잘 안 되면 금방 시들해져서 그만두는 친구들을 가끔 보게 되면 안타깝고, 충분히 갈 수 있는데 못 기다리고, 내가 거기까지 성장할 때까지 못 기다려 주고, 그런 상황을 볼 때 좀 많이 안타깝죠.

김효진 : 음악하기에 너무 바쁜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핑계겠지만요.

이지영 : 음악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짓눌려 있어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슬퍼요. 음악은 다른 고민하지 않고 훈련에만 집중하는 일정 기간이 필요한데, 그럴 시기에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인생은 정말 긴데. 100세 시대 잖아요. 살면서 직업이 몇 번 바뀔 수도 있고,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는데 스무 살, 스물 다섯밖에 안된 친구들이 ‘이번 생은 망했어, 이생망' 하잖아요. 나는 재능이 없으니까, 뭐가 안 되니까 이건 안된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꽉 채워 놓고 살아가는게 아닐까 싶어요. 음악적인 성과와 상관없이 삶의 태도 자체가 그렇다는거에요.

충분히 지금 가지고 있는 걸 누리면서 살아 가도 괜찮은데, 우리는 너무 불안해해요.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다 조마조마하고 두려워하면서 삶을 살고 있죠. 돈 있는 사람은 돈 있는 사람대로 불안하고, 나이든 사람은 나이든 사람대로 불안하고,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불안하죠. 그런데 음악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몇 년 정도는 그런 식의 마음은 제쳐버리고 음악에 집중하고 즐거워하면서 빠져 들어야 되는데, 그 시기에 벌써 미래에 대한 걱정이 다들 너무 많죠. 저는 모험을 할 수 있는 시기에 살았다면, 요즘 친구들은 우리 대학 다닐 때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계산적으로 고민하는 것 같아요. 뭐 다른 전공을 하는데 있어서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하고 싶을 때에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마이너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김효진 : 음악을 만드실 때에는 어떤 걸 주로 담으려고 하시나요?

이지영 : 저는 약간 예술지상주의에 가까운 쪽이에요. 그냥 음악에서 즐거움과 환희를 느끼고, 너무 아름답고 좋아요. 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거나 자신의 의도를 투영시키고자 하는 아티스트들도 있지만, 저는 그냥 소리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질문하신 것처럼 어떤 것을 특별히 담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타이틀을 붙일 때 좀 곤란한데, 제가 어떤 제목을 정하고 곡을 쓰는 게 아니니까요. 가끔은 음악에 뭔가를 반영하면 좋겠다고도 생각하지만 제 작업 루틴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냥 연주를 하고 곡을 써보다가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아가는 거죠. 그 답이 바로 찾아지기도 하고, 한 6개월을 못 찾다가 나중에 우연히 답을 찾는 때도 있고.

김효진 : 그런 루틴이 맞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으셨어요?

이지영 : 특정한 시점을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고요. 제가 음악 시작할 때 정말 좋아했던 작곡가가 라벨Ravel 이에요. 라벨을 너무 좋아하는데 '왜 라벨을 좋아하는가?', '라벨이 만들어내는 그 소리를 나도 구현하고 싶다' 이런게 저한테는 음악적인 원동력이죠.예를 들면 저는 디안젤로D'Angelo 도 너무 좋아해요. 그럼 디안젤로는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떤 리듬을 구현하고 어떤 식으로 음악을 만드네? 나도 나만의 것으로 그런 거를 가능하게 하고 싶다, 하는게 제 음악의 출발점 같은 거에요.

저한테는 이게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 같은건데, 누구 음악에 완전히 꽂혀서 이 사람처럼 하고 싶다고 하는거에요. 처음엔 빌 에반스가 그중 하나 였죠. 빌 에반스가 어떻게 치든지간에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겠다. 허비 행콕이 뭘 하면 그게 뭔지 나도 그 비밀을 알아내서 하고 싶다. 이런게 쌓이고 쌓이면서 음악이 발전해왔죠.

김효진 : 그럼 그런걸 의식하면서 교육을 받으셨나요?

이지영 :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난데, 저는 한국에서 동덕여대도 다녔고 유학도 가봤지만 노스 텍사스 대학교에서는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라', '음악을 어떻게 연주해라' 하는 걸 가르치지 않아요. 오히려 저는 궁금해요. 티칭을 구체적으로 한다는 것은 어떻게 음악을 배우는건지. 제가 들은 바로는 요즘 입시 선생님들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솔로 방식, 곡 쓰는 방식 등을 훈련 시킨다고 하는데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배우지 못했어요. 그래서 처음 학습할 때는 불만이었죠. 재즈를 어떻게 공부하고 익히는지 요목조목 알려주면 좋을텐데 다들 그걸 안 알려주는 것처럼 보이니까. 알려줘도 코드톤이나 스케일. 이것들은 사실 재료에 불과한 것들이잖아요. ‘실제로 솔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그걸 모르겠으니까 너무 답답해서 찾은 방법이 카피였어요. 모르겠으니까 죽어라 땄죠. 허비 행콕도 따고, 키스 자렛도 열심히 카피해서 외우고, 그대로 연주 하고 났더니 그 후엔 비슷하게 나오더라고요. 이 방법은 그들의 연주를 논리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직관적으로 흡수하는 방식인데, 그게 충분히 쌓이고나니 ‘이런 식으로 연주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음악이 정답을 알려주는 것처럼 즉흥 연주를 했어요.

그리고 작곡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요. 우리 학교에는 작곡수업이 없었어요 아예.편곡 수업은 있었지만 그 수업도 교수님이 맨날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시는 스타일이신지라 철학적인 얘기만 하시지 실제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 가르쳐 주시는 스타일이였어요. 빅밴드 편곡하라고 숙제가 나오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죠. 그래서 제가 직접 마리아 슈나이더 빅밴드의 총보를 찾아서 이 사람이 어떻게 쓰는지 보고 흉내내서 가져갔어요. 그래서 제가 옛날에 빅밴드 편곡 한 거 보면 되게 참신하긴 하지만, 빅밴드 편곡은그렇게 하면 안 되요. 공식 좀 있거든요. 그 공식을 알면 쉬운데 우리한테는 그런걸 안 가르쳐 주니까 그렇게 했던거죠. 피아노를 아무렇게나 쳐가지고 그걸 악보로 그려갔거든요.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한 면과 바보 같은 면이 공존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작곡도 “쓰고 싶은 걸 써" 이게 끝인 거야. 화성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 얘기를 해주지도 않아요.

김효진 : 참신한데요? ㅋㅋㅋ

제가 한때 라흐마니노프를 너무 좋아 했던 시기가 있는데, 이 사람처럼 곡을 써보고 싶은데 할 줄 아는게 없으니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에 코드를 다 붙여 봤어요. 코드를 붙여 가지고 ‘아 라흐마니노프는 재즈로 치면 요 코드에서 요 코드로 바뀌는 거를 좋아하는구나’ 그런 식으로. 라벨도 코드를 많이 붙여보고. 어떻게 보면 제가 작곡 할 때 나오는 화성적인 알고리즘은 거의 클래식 뮤지션에게 왔다고 해도 무방해요.

키스 자렛도 되게 카피를 많이 했어요. 저는 키스 자렛의 오리지널 곡들을 되게 좋아했고 이 사람은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곡을 이렇게 쓰는 걸까 궁금했죠. 그래서 코드 진행을 다 따 가지고 악보를 만들어서 쳐 보고, 이 사람은 요런 사운드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거를 배웠죠. 그러다 보니까 요즘 학생들의 수동적인 교육 태도에 대해 자연스럽게 반감을 갖게 되나봐요. 나는 그렇게 안배웠는데, 나는 그렇게 음악을 안 했고. 제가 노스 텍사스에서 레슨 들어가면 선생님하고 잼하고. “요즘 뭐 하고 지내니?”, “야 너는 이 사람 카피를 좀 더 해 봐” 정도가 최고의 레슨이었어요. 즉흥연주 수업을 들어가면 곡 하나를 따오고, 학생들 다 같이 따온거 연주하고, 자기가 해보고 그랬죠. 구체적으로 라인을 어떻게 써야 한다, 화성을 어떻게 쓰면 아웃솔로가 된다... 이런 것들은 안가르쳐줬단 말이죠.

김효진 : 가르치실 때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겠어요.

이지영 : 옛날엔 제가 했던 방식으로 하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얘기를 많이 했죠. 아직도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웃음). 티칭하면서 많이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이런 방식이 잘 맞는 사람도 있고, 다른 방식이 좀 더 나은 사람도 있고, 일반화 할 수 없다는 거에요. 인간이라는건 자기 경험을 통해서 세상을 판단하고 얘기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죠. 제가 지금 말씀드린 방식이 최고의 연습방법이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려운거에요.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듣는 역사적인 뮤지션들은 거의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음악을 했더라고요.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시스템에선 그런 식으로 학습하는 게 많이 어렵죠. 환경 자체가 그럴만한 여유를 주지 않고.

이 인터뷰는 유튜브 영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김효진 :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이지영 : 재즈가 왜 이렇게 힘들까. 이게 한국 사회의 문제일까, 아니면 시대적인 영향일까. 이런 것들을 많이 고민했죠. 제 생각엔 익숙함에 대한 욕구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특히 한국 사람들이 익숙한 걸 좋아하는 성향이 있지 않나 싶고. 그런데 재즈는 매번 다르잖아요. 자작곡도 많고요. 제가 최근에 했던 프로젝트가 ‘뉴 트리오’인데요. 내가 마음대로 편곡하고, 쓰고 싶은 곡을 썼거든요. 사실 대중이나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좀 없는 음악인 거죠. 사람들은 익숙한 걸 원하고, 익숙함에서 얻는 위로 같은 게 있을 텐데. 또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재즈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거든요. 재즈가 예술로 인정될 부분이 있다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예도 있고 아티스트 간의 정체성도 다 달라요.

시대적인 이유로는, 옛날과 달리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이 정말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재즈가 설 곳이 줄어든 게 아닐까 생각해요. 사실 재즈는 청각만이 아닌, 감각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런 자극이 피곤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어버린 거예요. 저변이 탄탄한 사회에서는 그래도 그런 가치를 지탱하려는 반발력 같은 게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는 사정없이 무너져버리는 느낌이죠. 그래서 아까 얘기한 대로 ‘팬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은 돌파구라고 봐요. 근데 우리 세대는 그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고, 잘 해내지도 못했죠. 그래도 연주자는 내가 공연하면 다른 일 제쳐두고 보러 와줄 사람들을 만들어내야 해요. 그런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저도 혼란스러워요. 앞으로도 음악 활동을 계속하고 지속가능성을 찾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몰라서 아직 고민하는 것 같아요. 답이 없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인터뷰하게 되어서 뭔가 속시원한 이야기를 못해드린 것 같아 죄송하네요.

김효진 : 그래도 굉장히 잘 얘기해주셨어요.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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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 이 인터뷰는 2019년 5월에 진행되었습니다.

interviewer / 김효진(@hyojinism)

재즈와 사람을 연결하는 영감을 전하고자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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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Virgilio Hermann JD

Last Updated: 10/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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